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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 건륭 — 청 고종의 어필과 대필

  • #서예

전시소개

청 고종(1711–1799)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이름은 홍력(弘曆)이며, 연호는 건륭(乾隆)입니다. 재위 기간은 60년에 이르며 문치와 무공 모두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타고난 총명함을 지녔고 시·서·화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았으며 소장품 역시 풍부하였습니다. 정사를 돌보는 틈틈이 글씨와 그림을 즐겼습니다. 건륭 황제의 서예에는 대필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보친왕(寶親王) 시절(1733–1735)부터 이미 양시정(梁詩正, 1697–1763)이 있었고 즉위 후에는 장조(張照, 1691–1745)가 그 역할을 이어받아 첫 번째 황제 대필 서예가가 되었습니다. 장조는 건륭 10년(1745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 이후로는 여러 명의 문장을 담당하는 대신인 사신(詞臣)들이 대필을 맡았습니다. 현전하는 어제(御題) 글씨의 서풍을 살펴보면 왕유돈(汪由敦, 1692–1758)과 우민중(于敏中, 1714–1779)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세 서예가의 대필 상황이 상당히 불분명했으나 전해지는 어필 가운데에는 이들의 필적이 적지 않게 섞여 있습니다. 한편, 건륭제 만년에 신임을 얻은 동고(董誥, 1740–1818)의 경우에는 대체로 황제의 명에 따라 글을 쓴 것으로 판단되며 대필에 대한 의문은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이들 사신 가운데서도 장조가 특히 높이 평가받았으며 그가 사망한 이후에는 그의 글씨를 모아 『흠정천병재법첩(欽定天瓶齋法帖)』이 간행되었고 ‘왕희지 이후 제일인자(羲之後一人)’로 추앙받으며 건륭제 시기 관각(館閣) 서풍의 기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황제의 어제(御題), 대필 그리고 사신들의 친필을 나란히 전시하여 관람객이 각각의 서풍 차이와 서로 다른 서예에 관한 학문적 소양을 직접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각 시기의 대필 서예가들을 이해하고 오랫동안 잊혔던 황제 어필의 진면목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동안 이들 대필 서예가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전해지는 어필 가운데 필법이 우수한 것들은 흔히 건륭제의 친필로 간주해 그로 인해 서예 수준에 대한 과도한 평가가 형성되는 편향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오해는 건륭 황제의 서화 감식 수준을 잘못 판단하게 하였고 많은 경우 사신들의 의견이 그 안에 섞여 들어가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혼재되어 있던 ‘건륭제 어필’이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사신들의 개입과 그 영향력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래야만 황제가 실제로 지녔던 서예의 양상과 취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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