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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묵의 진면목을 보다-고궁박물원 소장 서예 가이드 (2024-II)

  • #서예

전시소개

서예는 한자문화권의 고유한 예술로 오랜 기간 동안 중국 문화전통 중에서 체계를 형성하였으며 또한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 응용되었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격이 전혀 없습니다. 중국 서예가 예부터 오늘에 이르는 발전의 역사적 과정은 모두가 관심을 갖는 주제로 이 전시는 여기서 출발하여 그 동안의 발전 맥락을 드러내 보이고자 합니다.

진한 시대는 서예 발전에서 관건이 되는 시기로 한편으로는 삼대(三代)* 이후 고문의 대전(大篆) 서예체로 쓰는 것과 금속이나 돌에 새긴 글이 서로 나뉘어지는 현상이 하나로 통일되어 표준적인 서체인 소전(小篆)이 나타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춘추전국 시대의 싹을 튼 새롭게 일어난 서체인 예서(隸書)는 이 시기에 전서에서 간략하게 변화하고 성숙해지는 것에서 더욱 발전하여 한대 통용되는 서체가 됩니다. 시대적인 조류가 간편하고 빠른 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서 예서는 또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분화하여 점차적으로 초서(草書)와 행서(行書) 해서(楷書)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서체는 점차적으로 변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진남북조 시대에 들어선 이후 과도기적인 서예 양식과 각 서체가 섞여서 혼합된 서예 양식을 때때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서체가 변화하고 변천하는 시간을 보여주며 결구와 필법에서는 고유한 규칙을 건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당 시기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시기로 정치적인 통일로 남과 북 각지의 서예 풍조가 서로 만나게 되었고 필법의 발전은 완벽한 상태에 이르게 되어 이때부터 해서는 대대로 통용되는 서체가 됩니다. 송나라에 들어서 전 시대 명가들의 서예를 오래도록 보존하고 전하기 위해서 비문을 탁본한 서첩이 날이 갈수록 성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송나라 사람들은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서예가 개인의 개성과 자연스러운 정취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원대부터는 지속적으로 복고를 제창하는 것으로 전환되어 진과 당의 서예 전통이 계속되게 됩니다. 그러나 전통의 속박을 받지 않는 관념도 활발해지기 시작하여 명대에 이르러는 자유자재로 속박되지 않는 분위기가 떠오르게 됩니다. 명나라 사람들의 서예의 모습은 지극히 다양하였는데 특히 행초서(行草書)는 활발하고 자유로워 당시 전통적인 법도를 따르는 사람들과 대비를 이룹니다. 그 사이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스스로 일격을 이룬 서예가들도 자아를 실현하는 길을 걸어 시대적인 조류에 침몰되지 않았습니다.

청대 이후 삼대와 진한의 옛 글인 전서와 예서가 계속적으로 출토되어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용적인 학술풍조의 영향 아래서 청나라 사람들은 비석을 연구하고 이로부터 비문을 탁본한 서첩과 함께 사용하여 서예 발전의 시야가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잇고 전서, 예서 두가지 방면으로 옛 것을 연구하면서 또한 창조적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夏)·상(商)[은(殷)]·주(周)의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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